본문 바로가기

포스팅을 위한 글

이런 저런 단편조각 같은 하루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마누라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자기야, 좀 일찍 집에 와 줄 수 있어?’…착 가라앉은 톤에 힘이 하나도 없는 듯 한 목소리였다.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1시간 먼저 회사를 나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마누라를 챙겨서 병원에 다녀왔다. 만성피로, 감기몸살, 혈액순환문제

쉬는 게 최고라는데

지난주 제주도 당일치기 여행도, 아마 오늘의 사태에 영향을 주었을 테고

 

작은애는 씻고 일찍 잠들었고, 큰 애는 이제야 학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선다. 마누라는 약 먹고 이불속에 들어간지 오래이고

녹차 한잔에 몸을 소파에 파묻었다. 멍하니, 창밖에 오가는 차량의 불빛을 쳐다보았다. 그냥 벽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10 45.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우울한 추모분위기 멘트자칭 전문가라는 분들이 뭔가를 열심히 애써 설명해 주려고 노력들을 하고 있다.

……

내일 아침거리애들 먹을 아침거리가 없다 !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근처 빠리바게트

꽤 늦은 시각인데, 제과점 안에 한 가족 인 듯 한 네 명이 앉아서, 열심히 토론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 약주 한 잔 하신 듯 한데 의 가르침이 불꽃을 튀긴다. “그 아이들은 말야. 물이 차오르기 전에 탈출 했어야 했다! 너희들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뒤 돌아보지 말고 몸이 반응을 해야 해!... 에이~ 근데, 이 빵가게 빵은 왜 이리 맛이 없어~… 저거 봐봐, 누가 책임지냐고, 믿을 수 밖에 없는 거야. 거긴, 엄마 아빠도 없을 테니, 스스로네 스스로…”

테이블 맞은편에 후드탑을 입고 꾸부정하게 앉아있는 아들 둘은 무표정하게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다. 옆의 아내는 이런 류의 남편 수업이 자주 있는 것인 듯, 별일 아니라는 듯어디 먹을 만한 빵이 또 없나? 하는 표정으로 제과점내 여기저기 선반위로 시선을 후루룩 훑어간다.

 

계산을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늦은 밤인데, 어느 노인이 수레에 짐을 아마도 빈 종이박스, 폐지, 그런것 같다 싣고 언덕을 내려 오고 있다. 가로등에 윤곽이 보인다. 그냥, 위화 (余華 : 중국의 세계적인 문학작가) 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이미 병들고 늙어 쇠약해진 허삼관이 자기의 친아들이 아님을 알았고 그래서 평소에 그렇게도 구박했던 아들을 위해마지막 매혈 (피를 팔아서 돈을 사는…) 하려 떠나려는그 장면

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수레를 끌고 내려오는 그 노인을 보고, 뜬굼없이 허삼관이 떠 올랐는지 나도 알 길이 없다.

 

다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마시던 녹차는 이미 다 식어 버렸다. 그저, 사방이 조용하다.